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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지익(申之益) 16∼17세기 李潛‧李得胤 父子의 講學活動과 門人의 動向
조선시대 청주지역은 서인 - 노론계의 宗匠인 尤庵 宋時烈이 학문
적 · 정치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던 지역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
직후 인근에 華陽書院과 萬東廟가 건립되어 노론의 상징적 장소가
되었다.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론계 세력확대에 반대하는 청주지
역 남인 · 소론계 사족에 의해 鄕戰이 일어났고, 1728년에는 남인 · 소
론 사족이 중심이 된 무신란 반란군에 의하여 청주성 점령까지 이루
어진 지역이다. 이러한 청주지역 사족의 모습은 이른바 17세기 후반
∼18세기의 2세대 사림의 활동으로 볼 수 있다.
그러나 이에 앞선 16∼17세기 전반 청주지역 1세대 사림은 2세대
사림과는 다르게 다양한 학풍을 수용하였고, 사족간의 다양한 학문적
교류가 이루어진다. 그리고 그 중심에 李潛 ․ 李得胤 부자가 있었다.
이잠과 이득윤 부자의 학풍과 강학활동과 문인 양성은 첫째, 琅城八
賢이라는 청주의 걸출한 학자군을 완성하게 했으며, 둘째 湖西左道에
서 두 번째로 莘巷書院을 건립하게 했으며, 셋째 이득윤과 이잠의 청
주 출신 문인 51명을 과거에 입격시켰던 것이다. 즉, 이잠과 이득윤
부자는 청주지역에 1세대 사림의 인물과 그 활동을 하나로 묶을 수
있는 강학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. 그리고 그 강학활동은 청주사림의
학문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.
그러나 이득윤 사후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중앙의 정계에서 불어
닥친 당쟁의 영향으로 이잠과 이득윤 문인들은 分岐한다. 그리고 그
움직임에는 이득윤의 수제자인 李德洙와 송시열이 개입되어 있다.
즉, 노론의 신항서원 운영주도권 확보 노력, 각 당파의 서원 건립․추향
경쟁, 각종 향전으로 문인들이 대립한 것이다. 그리하여 17세기 후반
에 이득윤의 문인과 그 후손은 철저히 당색으로 나뉘고, 이후 1728년
영조대 戊申亂이라는 격한 대립을 보여준 것이다. 그러나 무신란이
평정되면서 청주 지역의 학문, 사상사적 위상은 노론계가 중심이 되
어 더욱 강화되고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.